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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세계의 호수 : 그땐 왜 진실을 마주하지 않았을까CULTURE 2020. 6. 7. 17:29728x90반응형
보고싶은 책에 저장만 해둔 '세계의 호수'를 드디어 보게 되었다. 사실, '듣게 되었다'. 김대명 배우가 읽어주는 오디오북으로 '세계의 호수'를 들었다. 오디오 북 중에선 요약해서 읽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전체를 읽어준다. 함께 읽으면서 김대명 배우의 약간 연기섞인 목소리가 몰입도를 높여준다. 책의 저자인 '정용준' 작가는 첫 단편소설집 ⟪가나⟫를 통해 소통의 단절을 보여줬다고 한다. 이 책 역시 '소통'에 대한 책이다.
책의 화자인 윤기는 영화 감독이지만 일이 잘 풀리려고 할 때마다 일이 조금씩 틀어져 근근히 먹고 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윤기의 단편 시나리오의 실습 워크숍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진행되어 오스트리아로 향한다. 그때, 윤기는 7년 전 헤어진 무주가 떠오른다. 무주는 윤기와 헤어질 때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식으로 말하며 윤기와 헤어진 후 스위스에서 산다. 윤기는 '연락하지 마'라는 7년전의 무주의 말이 떠오르면서도 무주에게 메일을 쓴다.
그리고 무주에게 연락이 와서 스위스 장크트갈렌으로 가게 된다. 그때 워크숍 기간 동안 동행한 민영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세계의 호수'를 추천해준다. 윤기는 7년만에 만나지만 변함없는 무주와 무주의 딸, 유나를 만난다. 본 소설은 윤기의 입장에서 풀어나가지만, 윤기가 서술하는 무주를 보면 '무주의 속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윤기는 무주와 4년 간 만나고, 권태기가 왔을 때 헤어졌다고 말한다. 윤기의 시선에서 무주는 '갑자기'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며, 그 사람을 보기 위해 스위스로 떠났다. 그래서 '무주의 이별통보'로 헤어졌다고 말한다. 윤기는 '권태기가 있긴 했지만' 무주를 사랑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딱히, 무주가 그리워 미칠 것 같은 순간은 없다고 한다.
무주의 등엔 흉터가 있었는데, 윤기가 무주의 등에 투명한 밑줄을 긋는 모습에 마음이 동했다. 창밖에 눈이 오고 흉터를 어루만지며 밑줄을 긋는 모습. 윤기는 충분히 사랑했다. 그래서 헤어진 후에도 윤기는 사실 무주를 많이 그리워 한듯 하다. 그러나, 무주가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 자체의 무주를 좋아했다고 본다. 그리고 윤기는 무주가 헤어지자고 해서 헤어진줄로만 안다.사실, 윤기는 온 몸으로 '헤어짐을 통보'를 하고 모른 척 했을지 모른다. 무주가 다른 사람을 보러 떠난다 했을 때, 화가 났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연인은 화를 내야 하니까' 라는 생각에 화를 낸거지 진심으로 무주에게 화가 나서 화를 낸 것은 아니었다. 이미 윤기의 마음은 떠났으나, 무주에게 통보하지 않았을 뿐이다. 감정은 말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이별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행동, 표정, 말투, 시선에서 드러난다. 늘 곤란해하고 지겨워하는 윤기는 행동에서 이미 '이별을 통보'했을수도 있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김대명 배우의 연기로 들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의 호수'라는 제목 자체가 이미 스포일러가 된다. 항상 합리화하고, 자신의 감정을 포장했던 윤기였다. 민영이 윤기에게 장크트갈렌에 추천한 '세계의 호수'는 없었다. '세계의 호수'가 아닌 '세 개의 호수'였다. 듣고 싶은대로, 자신의 감정을 합리화 하던 윤기는 자신이 들리는대로 '세계의 호수'가 맞을꺼야 라는 확신으로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았다. 그래서 세 개의 호수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민영이 다시 '세 개의 호수'라고 말해준 뒤,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그때 무주를 향한 감정도 알아챘을 것이다. 우린 왜 그때 진실을 회피했을까. 윤기도 이미 자신의 감정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출처 = 밀리의 서재
이 책이 좋은 이유는 '세계의 호수' 에피소드와 무주와 윤기의 감정에 대해 번갈아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우린 윤기가 되어 '나의 감정에 대해, 모든 관계에 대해 진실을 회피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용준 작가가 다루는 '소통'의 방식이 좋다. 강력하지 않으면서 '뼈맞는 기분'이랄까. 지나간 연인들, 모든 관계와 나의 감정을 직면하게 된다.
별점 3.5728x90반응형'CUL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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